
中추격에 “10배 빠르게”… 최태원이 던진 위기감
중국 CXMT가 HBM3E 소량 생산에 들어가고, YMTC는 내년 말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치고 글로벌 낸드 1위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도 과거보다 10배 빠르게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말한 배경이다.
최 회장은 최근 “일본에 가면 일본 공장을 검토한다고 하고 미국에 가면 미국 공장을 검토한다고 하는데 최대 투자를 단행해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제주에서도 “지을 수 있는 모든 곳에 지어보려는 것이 지금 상황”이라며 “전 세계를 다 찾아서 어디가 제일 좋고 빠르고 크게 할 수 있는지 우선순위를 가려서 빨리 짓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생명줄처럼 됐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그가 내건 목표는 5년 안에 SK하이닉스 전체 웨이퍼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국내 1100조 이미 시동, 인디애나도 첫삽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6월 용인 600조원, 청주 100조원, 서남권 400조원 등 약 1100조원 규모의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시동을 걸었다. 이 중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네 번째 팹은 완공 시점을 당초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이나 앞당긴다. 청주에는 낸드 신규 팹과 생산장비, HBM 첨단 패키징 투자가 예정돼 있고, 서남권에도 신규 생산거점을 단계적으로 세운다.
해외에서는 미국이 먼저 삽을 떴다. 지난달 27일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40억달러 이상 규모의 HBM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 착공식이 열렸다. 2028년 클린룸을 가동하고 2029년 하반기에는 차세대 HBM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웨이퍼는 한국에서 만들어 인디애나로 보내 패키징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선택지’ 하나… SK “미국과 양자택일 아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 1일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일본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와의 공동생산을 “하나의 선택지”로 꼽았다. 생산뿐 아니라 R&D와 공급망 공유까지 협력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고, 일본 내 신규 생산시설 건설 역시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했다. 다만 신규 공장이나 키옥시아 기존 생산시설 증설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단계는 아니다. 일본 현지 매체들이 자국 투자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발언이 실제 투자 계획으로 다소 과장돼 전해진 측면도 있다.
SK가 그리는 핵심 생산기지는 어디까지나 한국이다. 전력과 용수, 인프라, 공급망 조건을 갖춘 지역을 국내외에서 두루 살펴보는 과정에서 일본도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침 일본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재건에 나서며 TSMC와 마이크론 등의 현지 투자를 지원하고, 소재·부품·장비와 연구개발 기반도 이미 갖춰져 있다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결국 SK 입장에서는 특정 공장 건설을 못 박은 게 아니라, 필요한 생산능력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지 조건을 저울질하는 단계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가 검토 중인 키옥시아와의 협력은 키옥시아 자체 투자 계획과는 별개다. 키옥시아와 샌디스크는 지난달 27일 일본 정부 지원을 전제로 2032년까지 현지에 5조엔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두 회사가 지난 25년간 일본에 쏟아부은 금액이 약 9조엔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SK 측은 “최 회장이 언급한 공동생산도 신규 합작공장이나 기존 공장 증설을 특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거론되는 분야는 생산과 R&D, 공급망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과 일본을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구도도 아니라는 게 SK의 입장이다. “일본에서 투자를 검토한다고 미국을 배제하거나, 미국 투자를 추진한다고 일본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투자 조건에 따라 두 나라 모두에서 사업을 벌일 수도,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신규 메모리 팹 건설에는 최소 3년이 걸리는 만큼, 용인·청주 등 국내 투자와 미국 인디애나 착공은 진행 중이지만 일본을 포함한 추가 해외 생산거점의 지역과 투자 규모, 착공 시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