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빌 게이츠 테라파워 이사회 의장이 또 한 번 마주 앉았습니다.
2022년 SK가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맺은 인연이, 이번엔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을 함께 키우는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지난 14일 서울에서 SK이노베이션 추형욱 대표와 테라파워 크리스 르베크 CEO가 나트륨(Natrium) SMR 사업 협력의 주요 조건에 합의하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SK이노베이션과 SK㈜는 2022년 공동 투자로 테라파워 2대 주주 자리에 올라 있는데요, 이번 합의로 단순 투자자에서 실제 사업 참여자로 한 단계 올라서는 모습입니다.
미국 실증 프로젝트부터 발 담근다
합의서에는 테라파워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SMR 실증로와 그 이후 상용 프로젝트에 SK이노베이션이 더 깊이 참여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국내 SMR 공급망을 활용하고, 국내용 나트륨 SMR 사업도 개발하고, 해외 프로젝트를 함께 발굴하는 것까지 협력 범위에 들어갔습니다.
SK이노베이션이 먼저 눈독 들이는 곳은 미국 와이오밍주에 지어지는 ‘케머러 1호기’입니다. 테라파워의 나트륨 SMR 프로젝트로,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상업용 원자로 건설 허가를 이미 받은 상태입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프로젝트를 비롯한 미국 사업에 참여 폭을 넓혀서 설계와 건설, 운영 전 과정에서 실전 경험을 쌓을 계획입니다. 이후 나오는 상용 프로젝트에서는 사업 기획부터 돈을 어떻게 모을지, 부품과 자재를 어디서 조달할지까지 테라파워와 함께 들여다볼 예정이고요.
미국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새 SMR 프로젝트가 있는지도 두 회사가 같이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목표는 미국 하나가 아니라 아시아까지
두 회사는 미국에서 쌓은 경험을 국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동시에, 한국·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나트륨 SMR 사업 기회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국내용으로는 ‘K-나트륨’이라는 이름의 사업 모델을 단계적으로 구체화한다는 계획인데요, 나라마다 다른 원전 규제와 전력망 상황을 하나씩 짚어가며 국내 연구·설계기관, 원전 관련 기자재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급망 구조도 함께 그려볼 예정입니다.
나트륨 SMR이 뭔지 짧게 짚고 가면, 테라파워가 개발한 4세대 원자로에 열을 저장해뒀다가 전력이 많이 필요한 시간대에 꺼내 쓰는 저장 장치를 결합한 방식입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전기를 뽑아 쓸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결국 노리는 건 AI 데이터센터 전력
SK이노베이션이 이 기술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는 AI 데이터센터입니다. 데이터센터는 하루 종일 끊기지 않는 전력이 필요하고, 사용량도 계속 늘고 있거든요.
SK이노베이션은 원래 하던 LNG 직수입과 LNG 발전, 전력 사업에 SMR을 더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SK온의 배터리 저장장치(ESS) 사업도 여기에 붙입니다. 데이터센터를 처음 지을 땐 LNG 발전과 ESS로 전기를 대고, 시간이 지나면 SMR을 탄소 배출 없는 기본 전력원으로 쓰는 식입니다.
SK하이닉스가 AI 반도체를, SK텔레콤이 AI 데이터센터 사업을 맡고 있는 가운데 전력 쪽은 SK이노베이션의 LNG·발전 사업과 SK온의 ESS가 채워왔는데요, 이번 합의로 여기에 원전까지 더해지는 셈입니다.
최 회장과 게이츠 의장의 이번 만남에서도 데이터센터 확산에 필요한 전력 공급과 차세대 원전, 한미 원자력 협력 방안이 주로 오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 회장은 그동안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에너지 역량까지 묶어서 SK의 사업 전체를 설명해왔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국내 연구·설계기관과 기자재 기업이 얼마나 참여할지, 핵심 부품은 어디서 조달할지, 국내에는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는 정부와 계속 협의해야 하는 부분이고요. 사업 지역이나 투자 규모,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추형욱 대표는 이번 합의가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나트륨 SMR의 국내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글로벌 사업을 함께 넓혀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테라파워와 계속 소통하면서 K-나트륨 사업 방향을 다듬고, 미국 프로젝트 경험을 발판 삼아 해외 시장 진출도 넓혀가겠다는 입장입니다.
미국 프로젝트에서 SK이노베이션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맡고 투자 규모와 자금 조달은 어떻게 할지는 앞으로 이어질 협의에서 정해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