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현지시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수요만 보면 전망치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출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전망치부터가 결코 작은 숫자는 아니다. 브로드컴은 이날 2026회계연도 AI 반도체 매출을 580억달러로 잡고, 2027년엔 1150억달러, 2028년에는 2300억달러까지 끌어올리겠다는 3개년 로드맵을 함께 내놨다.

이런 자신감의 근거는 방금 마감한 3분기 성적표에 있다. 2026회계연도 3분기 전체 매출은 295억91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86% 늘었고, 그중 반도체 솔루션 부문은 208억3900만달러를 기록하며 127% 성장했다. 특히 AI 반도체 매출 167억달러가 눈에 띈다. 1년 전보다 221%, 직전 분기 대비로도 54% 불어난 수치이자 전체 매출의 56%에 해당한다. 이 성장을 이끈 건 맞춤형 가속기(XPU)다. XPU 출하량은 전년 동기의 3.5배를 넘어섰고, XPU 매출만 떼어놓고 보면 AI 반도체 매출의 73%에 달한다.
이 XPU를 사들이는 고객 면면도 화려하다. 3분기에는 구글과 앤트로픽에 ‘아이언우드’ TPU v7을 대량으로 실어 날랐고, 구글이 주문한 TPU v8i와 오픈AI의 첫 맞춤형 가속기 ‘잘라페뇨’ 출하도 이 기간에 시작됐다. 4분기로 넘어가면 구글 TPU v8i 물량을 더 늘리는 동시에 메타의 맞춤형 가속기 MTIA 공급까지 새로 얹을 계획이다.
탄 CEO의 발언에는 근거가 있다. 그는 칩을 공급한 이후 고객사 데이터센터가 예정대로 가동되는지도 매출 전망에 반영했다고 덧붙였다. 브로드컴이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변수는 데이터센터 부지·전력·시스템 구축 일정, 그리고 선단 공정 웨이퍼와 기판, HBM의 조달 상황이다. 기판 확보를 자체적으로 풀기 위해 싱가포르 공장에서 2027회계연도부터 직접 생산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4분기 숫자도 만만치 않다. 브로드컴은 AI 반도체 매출 217억달러(전년 동기 대비 236%↑), 전체 매출 348억달러를 각각 제시했다. 다만 수익성은 다소 흔들린다. 비GAAP 기준 매출총이익률 전망치는 73%로 1년 전보다 5%포인트 낮아졌는데, 아미 투에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XPU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XPU 한 대당 들어가는 메모리 양도 함께 늘어난 탓이라고 짚었다.
SK하이닉스는 프로젝트 단위로, 삼성전자는 통 큰 MOU로
브로드컴의 이 로드맵 뒤에는 한국 메모리 업체 두 곳이 자리한다. 먼저 SK하이닉스는 브로드컴이 설계한 ASIC을 채택한 최종 고객사 프로젝트별로 HBM을 공급하는 구조를 취한다. 이 관계가 한층 깊어진 계기는 지난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탄 CEO의 만남이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HBM 로드맵과 기술 개발 방향을 브로드컴에 미리 공유했고, 브로드컴이 AI 반도체를 설계하는 초기 단계부터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기술을 반영하기로 뜻을 모았다.
삼성전자와는 좀 더 포괄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두 회사는 지난 7월 메모리·파운드리 협력을 확대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는데, 2030년까지 5년간 예상되는 협력 규모만 2000억달러를 웃돈다.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의 HBM을 비롯한 메모리 솔루션이 브로드컴 차세대 AI 가속기를 뒷받침하고, 파운드리에서는 2나노미터 이하 공정 기반 무선광대역통신(WBC) 제품과 2.3차원·2.5차원 첨단 패키징에서 손을 잡는 방식이다. 삼성전자 DS부문 관계자는 “HBM은 AI 가속기용, 파운드리는 통신용 반도체 솔루션으로 보면 된다”며 “그 밖의 상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작 가장 궁금한 숫자는 베일에 싸여 있다. 브로드컴이 2027~2028년분으로 확보했다는 HBM 물량을 공급사별로 얼마씩 나눠 가져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 역시 품목별 공급 규모나 일정을 밝히지 않았고, SK하이닉스가 고객사별로 얼마를 공급하는지도 아직 확인된 바 없다.